나날이 늘어가는 책들을 보면서, 이중슬라이딩 책장을 하나 짜는 것은 나의 오랜 로망이었다. 2년 전 여기 저기 알아보다가 인터넷을 통해 우드워크숍을 알게 되었고, 견적을 내기까지 했었다.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집안에 있는 책장에 여유가 있어서 주문을 하지는 않았다.
올 봄 이후 다시 책장을 하나 하고 싶은 병이 도졌다. 마침 E가구에서 파는 기성품 이중슬라이딩책장을 발견했다. E가구에서는 주문제작도 가능하다고 했다. 가격도 생각보다 안 비싸서 E가구에서 주문제작하는 것으로 거의 마음을 굳혔다. 그런데 아내가 “새 가구에서 나는 화학약품 냄새가 싫다”면서 “이왕 큰마음 먹고 하는데, 할 거면 원목 가구로 하라”고 했다. 고마웠다.
마침 최근 알게 된 목수가 있어서 의논을 해 보았다. 이야기를 나누어보니, 진정성이 엿보였다. 하지만 아쉽게도 그가 제시한 가격은 너무 높았다. 그때 2년 전 견적을 냈던 우드워크숍이 생각났다.
다시 우드워크숍에 견적을 요청했다. 가로 3m×세로56㎝×높이2.1m, 7단 책장 9개가 들어가는 이중슬라이딩 책장이었다. 소나무 원목에 갈색 염색, 코팅을 하는 것으로 했다. 가격은 E가구에서 제시한 가격보다 40~50만원 정도 높았다. 원목가구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리 크게 비싼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. 아내와 직접 우드워크숍을 방문해 제품들을 살펴본 후, 물건을 주문했다.
책장이 들어오는 날이 가까워 오면서 잠을 못 잤다. 어떻게 하면 책들을 효율적으로 잘 배열할 수 있을까? 제품이 기대에 못 미치면 어떻게 하나? 돈을 왕창 더 주고서라도 당초 의논했던 목수에게 주문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? 책장이 너무 커서 집안에 들어올 수는 있을까? 별의별 걱정이 다 들었다.
지난 9월27일 드디어 책장이 들어왔다. 너무 진하지도, 너무 옅지도 않은 갈색 색깔부터 너무 마음에 들었다. 나뭇결이나 옹이자국이 그대로 보이는 것이 기성품을 판매하는 가구점에 있는 천편일률적인 책장들과는 느낌부터 달랐다. 우드워크숍에서 나온 두 사람의 젊은 직원들은 솜씨 있게 책장을 조립해 나갔다. 인상이 좋은 만큼이나 행동거지도 예의발랐다. 드디어 책장 완성! 가슴이 두근거렸다. 금요일 밤늦게까지 책을 정리했다. 한국사, 동양사, 서양사, 정치, 경제-경영, 문학, 인문.....종류별로 책을 정리해 꽂으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.
어제, 오늘 다시 책장을 정리하고,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렸다. 페북 친구들, 특히 ‘행복한 고전읽기’ 동호회 친구들은 모두 부러워서 난리가 났다. 고교 친구도 사진을 보고서는 “남자의 로망을 이루었다”면서 부러워했다. 책장을 보고 또 보면서 미소 짓는 나를 보면서 아내는 “그렇게 좋으냐?”고 핀잔을 주면서도 같이 웃는다.
보면 볼수록 마음에 든다. 가격, 모양, 색깔, 모두....새 가구를 들여놓았을 때 나는 화학약품 냄새도 없다. 엄청난 무게의 책을 실었으면서도 책장이 부드럽게 움직이는 것을 보면, 참 흐뭇하다. 품질에 이상 없이 20년, 30년, 아니 남은 내 인생 내내 이 책장과 같이 갈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.
튼튼하게 오랫동안 서재를 지키는 가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.
책장들은 이렇게 책을 꽂아두신 모습을 볼 때 참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.
정작 만드는 사람들은 큰 책장을 못 두고 지내는데, 언젠가 시간을 내어 저희도 큼지막한 책장을 만들어 쓰고 싶네요 :-)